윤동주의 <병원> 시들시들한 날의 시 읽기

참 고즈넉한 그러나 에로틱하기까지 한 시가 있다. 윤동주의 <병원>이란 시다. ‘진리는 미풍을 타고 온다.’라고 말한 이는 니체였던가. 식물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이 오히려 시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전문을 보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그는 지금 아프다. 피로하다. 그러나 의사는 그에게 병이 없다고 말한다. 아픔은 있는데 병은 없단다. 대체 아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알 수가 없다. 피로할 뿐이다. 그는 병원의 창문을 내어다 본다. 한 젊은 여자가 뜰에서 일광욕을 한다. 병든 여인, 삶의 약동을 잃어버린 여인이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관능에 그는 살짝 압도당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연민은 사랑의 단초(端初)다. 저런 안 되었네, 싶은 마음이 사랑의 베이스캠프다. 얼마나 많은 영화가 울음을 달래주는 위로의 포옹이 격렬한 입맞춤과 정사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던가. 연민과 위로는 에로티시즘의 시작이다. 일광욕을 하던 여인이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그는 그녀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그녀가 누웠던 자리는 그녀가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녀의 체취와 온기가 남아 있다. 그녀가 아닌 것에서 그녀를 읽는 페티시즘은 명백히 변태다. 그러나 이런 식물성 변태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아픔과 그녀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생각, 너도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래서 이 시는 참 착하게 읽힌다. 살짝 흰 종아리를 드러내는 수줍은 에로티시즘이 순정하게 읽힌다. 윤동주의 환하고 착한 이마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부쩍 차가워진 아침이 일순 따뜻해진다. 녹차 한 잔을 마시며 빙싯 한 번 웃어본다.
.................................윤동주 시 속의 여자는 Nicoletta Tomas 의 일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아픈 자에게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마술사 해리슨 벨의 묘비명 미시시피의 선물


해리슨 벨은 탁월한 마술사였다. 그는 평생 온몸에 쇠사슬로 얽혀있는 자물쇠를 푸는 '탈출마술'만을 선보였다, 그는 우리에 갇힌 지 3분만에 맹독성 코브라 수십 마리가 쏟아지게 되어 있는 장치 안에서 2분 58초만에 탈출하는 묘기로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냈고,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수조 안에서 거의 실신에 가까운 상태로 쇠사슬로 얽혀있는 자물쇠를 풀고 4분 30분초만에 탈출해 절규에 가까운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시카고에서 발행되는 마술전문잡지 <리마커블>의 마술평론가 다니엘 레이는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4분 30초>라는 글에서 "결국 그는 살았지만 우리는 죽었다."라는 문구로서 그날의 감동을 압축했다.
해리슨 벨의 모든 묘기는 치밀한 계획의 소산이었다. 그 계획의 핵심은 특수 제작된 자물쇠의 확보였다. 그는 특수한 자물쇠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수입의 70프로를 할애했고, 마술투어의 여백시간의 대부분을 특수 제작 자물쇠 확보에 투자했다.
어떤 이들은 마술의 세계는 속임수의 세계라며 그의 마술을 깎아내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당히 <리마커블>지에 그의 소견을 피력했다.
아이의 뺨에서 돌연 파랑새를 꺼내드는 마술사 앞에서 휘둥그레지는 아이의 눈, 바로 그 눈이 마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눈이다. 마술과 역사학을 착각하지 마시라. 진실은 마술의 적이다. 논리의 세계 그 너머를 보시라. 마술은 거짓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마술이 된다. 일간지를 빼곡하게 채우는 너무도 많은 사실들을 보라.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실에 지쳐있다. 삶은 때로는 한 잔의 달콤한 거짓의 칵테일을 요구한다. 그 잔에 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렸을 뿐이다. 당신의 선택을 강요하지 마시라. 우리에게는 진실에 서야할 의무가 있듯이 거짓에 취할 권리 또한 있다.
그러던 그의 삶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은 그의 손자가 우연히 뱉은 말 한마디였다. "할아버지, 마술은 다 뻥이라면서요." 그는 손자의 이 말에 매우 의기소침했고, 이후로 그가 하는 모든 마술이 시들해보였다. 그는 모든 마술투어를 취소했고, 그의 방안에만 틀어박혔다. 오랜 칩거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커튼을 걷고 내다본 어느 4월의 봄날, 그는 진정한 마술의 세계를 창밖에서 보았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Nothing의 벌판에서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대지, 새와 벌이 날고 아침의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거미줄의 세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의 세계였다. 그는 마법의 세계에 진정으로 입문하기 위해 카톨릭에 귀의해 경건한 신자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클리브랜드 교외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단촐하게 놓여 있는 그의 묘비명은 벨의 전력을 다소나마 눈치챌 수 있게 한다. 물론 그의 마술사로서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행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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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내시의 유서 미시시피의 선물


왜 수많은 독일인들이 나치의 명령에 굴복했을까. 어떻게 나치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들어 1,200만명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가스를 마시게 하고, 교수형에 처하게 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1961년, 예일대학의 심리학과 조교수 스텐리 밀그램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위대한 실험을 계획하게 된다. 실제처럼 보이지만 작동하지 않는 가짜 ‘충격기계’를 만든 것이다. 그러고는 수백 명의 지원자들을 모아 한 사람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은 이를 사실로 믿고 전기충격을 가했다. 하지만 전기충격을 받은 사람은 실제로 돈을 받고 고용된 배우였다. 그들은 가짜고통을 연기했고 심지어는 죽음을 가장하기도 했다. 실험 결과는 뜻밖에도 65퍼센트의 사람들이 불합리한 명령에 굴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 제임스 내시는 올란도의 그의 집 거실 소파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거실 바닥에는 그의 관자놀이를 관통시킨 피스톨 한 자루가 놓여있었고 탁자에는, 그의 일그러진 두개골로부터 튀었을 혈흔이 묻어있는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탁자에는 다 마신 위스키 빈 병이 놓여 있었지만 유서의 글씨는 가지런하기 이를 데 없었다.
150볼트의 전기충격이 그에게 가해졌을 때, 그는 소스라치며 몸을 비틀었다. 그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갔다. 내 손은 내게 묻고 있었다. 당신이 한 일이 뭐지. 대체 당신은 어떤 일을 저지른 거지. 나는 그 질문에 대답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예일대학이 시킨 일을 했을 뿐이야. 예일대학은 마피아가 아니야. 예일대학이 내게 끔찍한 범죄를 명령할 수는 없어. 나는 그 믿음에 따랐을 뿐이야. 그러나 그는 내 눈앞에서 한 마리 개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제기랄,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가짜였다니. 그의 고통, 그의 절규마저도, 그의 주검마저도 위장된 것이었다니. 그러나 나는 안다. 모든 것이 가짜였다 할지라도 내 손이 한 일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고통을 똑바로 응시하던 내 눈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명령을 접수하던 내 귀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내 손과 내 눈과 내 귀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제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때다. 이제 타인의 것이 아닌, 오직 내 자신의 명령에 모든 것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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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지베르의 일기 미시시피의 선물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으로 알려진 프란시스 골턴은 버밍엄의 은행가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런던의 킹스칼리지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칼 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정통 엘리트였다. 졸업 후에 이집트와 남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고 그 견문록을 간행하여 왕립 지구물리학회의 상을 받았다. 남다른 그의 지적 호기심은 지리학과 기상학, 지문연구, 통계학, 실험심리학에까지 미쳤으며 고종 사촌형 찰스.다윈의 《종(種)의 기원》에 자극을 받아 연구 방향을 유전학으로 돌려 1869년 <유전적 천재성 Hereditary Genius>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뛰어난 사람을 낳기 위해서는 환경보다 유전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한 사람의 위대성은 가문이 만드는 것이지 환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자신의 가문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의 소산이었다. 바로 이런 자부심이 열성 형질을 제거하고 우성 형질을 퍼뜨려야 한다는 우생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유전적 천재성>에서 유명한 판사, 정치가, 귀족, 군 지휘자, 과학자, 시인, 음악가, 화가, 성직자, 노 젓는 사람, 격투사들의 계보를 조사해 천재성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 주장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는 스위스의 식물학자 알퐁스 드 캉돌이었다. 그는 골턴이 유전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양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했다며 이전 두 세기 동안 위대한 과학자들을 배출한 곳은 종교적 관용, 광범위한 교역망, 온화한 기후, 민주적 정부를 가진 나라나 도시였다고 지적했다.
화학자이자 캉돌의 친구였던 도미니크 지베르의 일기에는 캉돌이 사석에서 말했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적혀 있다고 한다.
나는 평생 식물만을 연구했네. 그들에게는 지능이 없네. 천재적인 식물이란 말을 들어보았나? 아니면 멍청이 식물이란 말을 들어 보았나? 식물에는 우열이 없네. 아름다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에 불과하네. 우리가 보는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이 배추벌레에게도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에 속하는 일이네.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있다면 그것은 이 대지에 뿌리내리라는 것일뿐이네. 나는 옥토와 박토를 가리지 않고, 아무런 불평없이 자신의 땅에 뿌리내리는 식물로부터 때로는 어떤 위대한 정신성을 감지하네. 그러나 골턴은 어떠했는가? 그는 옥토와 박토를 따지지 않는 식물의 저 위대한 정신성을 배신했네. 우리에게 신성이 있다면 그것은 박토에서 자란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네. 식물에게 있어서 가문이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네. 모든 위대한 정신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네. 두 발 달린 동물이라고 해서 그것을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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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즈의 짧은 메모 미시시피의 선물


모니즈의 짧은 메모
안토니오 에가즈 모니즈는 1949년 정신과 수술을 개발하여 노벨상을 수상한다. 리스본의 코임브라 대학의 의학도였던 그는, 불안이나 고통과 같은 인간의 심리를 인간의 뇌세포로 환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단순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환자의 경동맥에 염료를 주입하여 종양의 위치를 눈에 보일 수 있게 하였다. 대단한 의학적 성공이었지만 윤리적으로는 최악이었다. 도덕의 패배였지만 지적 호기심의 승리였다.
그는 대담하게 자신의 기획을 전개했다. 그는 정신병이 두뇌의 신경섬유에 생리적으로 붙어있는 일련의 생각들이라고 믿었다. 신경섬유의 일부만 잘라내면 환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935년 11월 1일 산타마리나 병원에서 모니즈에 의해 세계 최초의 뇌엽절제술이 행해진다. 수술대 위에 누운 M여사의 깎인 머리 가죽은 국부 마취제 노보카인으로 소독되고, 그녀의 두개골 양쪽에 펜끝만한 구멍이 뚫린다. 그리고 그녀의 두개골로부터 신경조직이 꺼내어진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적응력 양호, 분별력, 지능, 행동 모두 이상이 없다는 의사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M여사가 수술을 받기 십오 년 전. 그녀의 배속에는 한 남자의 아기가 있었다. 분방한 자유주의자였던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임신소식을 듣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M여사의 불행은 거기서부터였다. 그녀는 독한 술을 밤마다 마셨다. 그녀의 방은 독한 여송연 냄새로 가득 찼다. 절제를 모르고 그녀의 몸 속으로 유입되던 독주와 니코틴이 배속의 아기를 온전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아이는 사산되었고, 그녀는 극심한 불안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악몽의 밤이 지속되었다. 악몽 속에서 그녀는 죽은 아이의 배속에 갇히기도 했고, 나는 엄마의 아들이야, 라는 환청과 함께 아이의 탯줄이 그녀의 목을 칭칭 동여매기도 하였다. 그녀가 꿈 속에서 만난 악몽의 기억들은 『기억의 정원』이라는 시집의 불온하고도 아름다운 시편들의 훌륭한 모티프가 되어주었다.
기억들로 가득한 봄의 정원에서
꽃들은 어떤 기억들을 상기해내느라
저토록 붉은 핏빛의 꽃잎을 피워내는 것인가
안녕, 편백나무가지 위에 노래하는 새여
나는 두꺼운 커튼을 치고
어둡고 축축한 나의 불꽃 속으로 간다.
고통의 수액을 빨아들여 무성해지던 그녀의 시가 성장을 멈춘 것은 뇌엽절제술이 행해졌던 1935년이었다. 훗날 안토니오 에가즈 모니즈는 M여사에 대한 짧은 메모를 남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상처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다. 내가 그녀의 기억으로부터 도려낸 것은 고통과 불안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삶과 예술 전체를 도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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